
이 글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희생, 아이언맨, 캡틴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영화 리뷰다. 인피니티 워의 스냅이 ‘상실’의 절정이었다면, 엔드게임은 그 상실 이후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며, 무엇을 대가로 역사를 되돌리는지를 보여주는 완결 편이다. 특히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MCU의 시작을 상징하는 두 축으로서, 각자 다른 방식의 희생과 결단으로 서사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리뷰에서는 엔드게임이 왜 “이기기 위해 잃어야 했던 이야기”로 남는지, 두 주인공의 선택이 어떤 의미로 완결을 만들었는지 중심으로 정리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희생과 완결
엔드게임이 단순한 시간여행 영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무엇을 되돌릴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대가로 치르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승리의 기쁨’이 아닌 ‘패배 이후의 잔존’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5년이 흐른 세계는 폐허라기보다 텅 빈 일상에 가깝고, 그 텅 빔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아프다. 거리와 공원은 멀쩡하지만 사람의 밀도와 에너지가 사라져 있고, 남은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상실을 수습하며 살아간다. 이때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피니티 워의 패배는 “리셋 버튼”으로 쉽게 지워질 사건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꿔버린 재난이라는 것. 그래서 타임 하이스트가 등장해도 영화는 그것을 만능 해결책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여행은 편리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들에게 가장 잔인한 시험이 된다. 과거로 가는 것은 ‘좋았던 시절을 다시 보는’ 것이지만, 동시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토르가 아스가르드에서 어머니 프리가를 만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토르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무너져 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한눈에 알아본다. 이 장면에서 시간여행은 과거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엔드게임은 희생을 “누가 더 고생했는가”의 경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희생은 선택의 형태로 반복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보르미르다.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야 한다는 규칙이 다시 등장하고, 이번에는 나타샤와 클린트가 그 희생을 서로에게 넘기려 싸운다. 이 싸움은 감정적으로 잔인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타샤의 선택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가게 하고 싶어서’이며, 클린트의 절망은 ‘또 한 번 가족을 잃는’ 고통의 반복이다. 이 희생은 단지 스톤 획득의 조건이 아니라, 엔드게임이 말하는 완결의 톤—“돌아오게 하려면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을 확정한다. 완결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건, 엔드게임이 승리의 대가를 끝까지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종 전투에서 수많은 히어로가 모여 싸우는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동시에 “이 승리는 값이 싸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깔아 둔다. 타노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스톤을 직접 사용해야 하고, 그 순간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대가는 치명적이다. 엔드게임이 대단한 건, 이 대가를 관객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선택이 실제로 실행되는 순간 여전히 충격을 받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는 캐릭터의 감정선과 서사의 필연성이 매우 정교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결국 엔드게임의 희생은 “감동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완결을 가능하게 하는 서사적 논리다. 상실을 지우는 대신, 그 상실을 인정한 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르는 비용. 그 비용이 너무 커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에 긴 여운이 남는다. 엔드게임은 그래서 “되돌렸다”가 아니라 “치르고 끝냈다”라는 감정으로 기억된다.
아이언맨
아이언맨의 엔드게임은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성의 완성으로 끝난다. 토니 스타크는 MCU 시작부터 ‘세계를 구하는 방식’을 기술과 통제, 자기 확신으로 풀어온 인물이다. 그는 늘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강박은 울트론 같은 실패를 낳기도 했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를 막지 못했을 때, 그 강박은 죄책감으로 바뀌어 토니를 잠식한다. 그리고 엔드게임 초반, 우주에서 돌아온 토니는 동료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사실상 관계를 끊는다. 그가 내뱉는 말들은 단순한 성질이 아니라, “또 실패할까 봐 두려운 사람”의 방어기제다. 그런데 엔드게임의 토니는 인피니티 워와 달리 ‘가정’을 가진 사람이다. 딸 모건은 토니에게 삶의 새로운 중심이 된다. 이 설정은 토니의 결말을 위한 핵심 장치다. 세계를 구하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토니는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가진다. 그래서 타임 하이스트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는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토니가 망설이는 이유는 비겁함이 아니라, 상실의 반복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우주를 잃었고, 이제는 딸을 잃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이 망설임 덕분에, 토니의 마지막 희생은 더 큰 무게를 얻는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진 상태에서 그걸 내려놓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토니가 스톤을 빼앗아 장착하는 순간은, MCU 전체의 원형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다.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는 아크 리액터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했고, 그 기술은 결국 “살기 위한 장치”였다. 엔드게임에서 스톤을 품은 나노 슈트는 반대로 “죽음을 각오한 장치”가 된다. 즉, 기술은 여전히 토니의 도구지만, 그 기술을 쓰는 목적이 완전히 달라진다. 토니는 기술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기술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토니의 마지막 대사는 캐릭터의 완결을 가장 간결하게 보여준다. “나는 아이언맨이다.” 이 말은 과거의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아 과시였을지 몰라도, 마지막에는 자기 책임의 선언이 된다. 세계를 구하는 행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결과를 혼자 감당하겠다는 결심. 그 한마디로 토니는 천재, 부자, 플레이보이, 자선가라는 껍질을 넘어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한 한 인간”으로 남는다. 장례식 장면에서의 침묵 또한 중요하다. 영화는 토니의 죽음을 과장된 슬로우나 장엄한 승리 음악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가 남긴 관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토니의 진짜 업적은 스톤을 쓴 순간보다, 그 순간까지 쌓아온 관계와 변화에 있다는 듯이. 그래서 아이언맨의 완결은 “가장 화려한 영웅의 최후”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선택의 결과”로 관객에게 남는다.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의 엔드게임 결말은 토니와 정반대의 결을 가진 완결이다. 토니가 자신의 삶을 희생해 세계를 구했다면, 스티브 로저스는 세계를 구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스티브는 MCU 내내 의무의 화신처럼 살아왔다. 그는 전쟁에서 깨어난 이후, 시대를 잃은 사람으로서 늘 목적에 매달렸고, 그 목적은 대체로 “옳은 일을 한다”였다. 문제는 스티브가 너무 오래 옳은 일을 해 왔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정작 자기 삶의 시간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엔드게임은 이 지점을 집요하게 찌른다. 스티브는 스냅 이후에도 상담 모임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돕고, 팀의 중심을 지키려 한다. 그는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너질 시간이 없는 사람”에 가깝다. 의무가 그를 지탱하고, 의무가 그의 빈자리를 가린다. 그래서 마지막에 스티브가 타임라인을 정리하러 떠날 때, 관객은 어렴풋이 느낀다. 그가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스티브의 선택이 논쟁을 불러온 이유는, 그 선택이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페기와 함께하는 삶을 택한다. 이 결정은 ‘도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보상’이다. 스티브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었고, 엔드게임은 그에게 단 한 번의 개인적 행복을 허락한다. 중요한 건, 이 선택이 의무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의무를 다한 뒤에야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스티브는 임무를 끝내고, 스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마지막 책임까지 수행한 다음에야 자기 삶을 산다. 즉, 그의 선택은 방임이 아니라, 마침내 허락된 휴식이다. 노년의 스티브가 방패를 샘에게 건네는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라는 상징의 계승을 의미한다. 스티브는 슈퍼 솔저 혈청이나 힘이 아니라, “가치를 지키는 태도”로 캡틴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넘기고 물러난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스티브가 끝까지 자신의 상징을 독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캡틴이라는 이름을 ‘직함’처럼 내려놓고, 그것을 누군가의 가능성으로 바꾼다. 한 시대의 영웅이 시대를 넘겨주는 순간이다. 토니의 죽음이 관객에게 “잃음”의 감정을 남겼다면, 스티브의 퇴장은 “살아봄”의 감정을 남긴다. 엔드게임은 이 두 감정을 함께 놓는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세상을 위해 불타고, 어떤 사람은 끝내 자신을 위해 살아본다. 그리고 이 대비가 MCU의 10년 넘는 여정을 ‘두 개의 결말’로 완성한다. 아이언맨은 불꽃처럼 꺼졌고, 캡틴은 조용히 삶으로 돌아갔다. 둘 다 그들 다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닫는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희생, 아이언맨, 캡틴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이기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를 끝까지 숨기지 않는 완결 편이다. 나탸샤의 희생이 되돌림의 조건을 확정하고, 토니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진 상태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인간으로 완성된다. 반대로 스티브는 의무를 다한 뒤에야 자기 삶을 선택하며, 캡틴의 상징을 다음 세대에 넘긴다. 다시 볼 계획이라면 보르미르의 선택, 토르와 프리가의 대화, 최종 전투의 스톤 탈취 순간, 그리고 장례식과 방패 계승 장면을 중심으로 “엔드게임이 어떻게 완결을 설계했는지”를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