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캡틴 마블' 분석(기억상실, 서사, 해석)

by yooniyoonstory 2025. 12. 14.

영화 '캡틴 마블' 분석 관련 이미지

 

이 글은 영화 캡틴 마블을 기억상실, 서사, 해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리뷰다. 주인공 캐럴 댄버스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과정, “누가 나를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크리와 스크럴 전쟁, 닉 퓨리와의 만남, 90년대 지구라는 배경이 어떻게 엮이는지 정리한다. 단순히 강력한 여성 히어로의 탄생담이 아니라, 타인이 만든 이야기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서사로 읽어 보려는 관점의 영화 리뷰다.

'캡틴 마블'의 기억상실 설정

캡틴 마블의 출발점은 굉장히 낯설다. 대부분의 히어로 기원 영화는 “일반인이 힘을 얻기 전의 삶”을 차근차근 보여주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소개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로 시작한다. 이미 초능력을 가진 캐럴(버스)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거의 보여주지 않은 채, 크리 전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에서 이야기를 여는 것이다. 관객은 처음부터 주인공과 비슷한 상태에 던져진다. “나는 누구였지? 왜 이 힘을 가지게 되었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영화는 이 질문을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로 정면에 걸어놓는다. 기억상실은 흔한 서사 도구지만, 캡틴 마블에서는 히어로 장르의 기본 공식을 비틀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캐럴은 자신을 “크리 군대에 의해 구원받은 전사”라고 믿고 있고, 욘-로그와 상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기억상실은 단순히 과거를 잃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타인이 만든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가 모두 크리 제국의 선전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꿈과 플래시백의 파편을 통해 이 서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전투 중 겹쳐 보이는 지구의 풍경, 낯선 여성(라슨 박사)의 얼굴, 자신을 이름 대신 ‘버스’라고 부르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캐럴은 미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기억의 파편이 더해질수록, 관객은 그녀에게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지만, 동시에 캐럴 자신은 여전히 “지금의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 지점에서 기억상실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지금의 나 vs 과거의 나”가 충돌하는 내적 갈등의 씨앗으로 기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억 회복의 과정이 외부의 구원자나 설명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닉 퓨리도, 탈로스도, 라슨 박사의 기록도 캐럴에게 실마리를 제공할 뿐, 최종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은 캐럴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영상 속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응시한다. 화면 속 조종사는 분명 웃고 떠드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크리 전사 버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간극을 메우는 순간이 바로, 기억상실을 딛고 자기 서사를 다시 쓰는 지점이다. 결국 캡틴 마블의 기억상실 설정은 히어로 기원을 뒤집는 장치다. 관객은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고, 주인공은 “내가 믿어온 이야기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조작된 버전일 수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기원은, 특정 사고나 실험으로 힘을 얻는 순간보다, “그 힘을 둘러싼 이야기를 누구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되돌아보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히어로의 탄생이 곧 자기 기억의 복구 과정이 된다는 점에서, 캡틴 마블은 기억상실 클리셰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서사 되찾기

기억상실이 전제라면, 그 다음 단계는 “누가 나의 이야기를 써 왔는가”라는 질문이다. 캐럴의 삶을 규정해 온 인물은 겉으로는 욘-로그, 그 뒤에는 크리 최고 지성체, 그리고 더 넓게는 크리 제국 전체다. 그들은 캐럴에게 끊임없이 같은 메시지를 주입한다. “너의 감정은 약점이다”, “힘을 쓰는 방법은 우리가 정한다”, “과거는 잊어버려라, 지금의 네가 전부다”. 이 말들은 언뜻 보면 군대 조직에서 흔히 들을 법한 멘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네 삶의 설명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욘-로그가 캐럴에게 싸움을 가르치는 훈련 시퀀스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감정 표현을 억누르고, 맨몸 전투 실력만으로 자신을 이겨보라고 요구한다. 이때 캐럴의 이마에 달린 장치는 상징적이다. 그것은 그녀의 힘을 통제하는 리미터이자, 동시에 “너의 힘은 우리 것이며, 언제든 꺼버릴 수 있다”는 상징이다. 캐럴이 이 장치를 믿는 한, 그녀는 스스로를 “타인의 허락 아래 존재하는 전사”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자기 서사를 빼앗긴 상태란 바로 이런 이미지에 가깝다. 지구에 추락한 이후, 캐럴은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과거 동료였던 마리아와 그녀의 딸 모니카는, 캐럴이 “누구였는지”를 힘이 아닌 관계와 기억을 통해 증언한다. 그들에게 캐럴은 초인이기 전에 “고집 세고, 웃음 많고, 무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친구”였다. 이때 관객은 크리에서 주입한 이미지와, 지구에서의 실제 모습 사이의 간극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캐럴이 울컥하는 이유도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이렇게 다른 버전으로 존재해 왔구나”를 체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기 서사를 되찾는 절정은, 최고 지성체와의 대면 장면에서 찾아온다. 지성체는 여전히 “너는 우리의 무기다, 감정을 버리면 더 강해질 수 있다”라고 속삭인다. 여기에 대한 캐럴의 대답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나는 계속 넘어졌지만, 매번 다시 일어났다.” 영화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공군 훈련, 추락과 실패의 순간들을 몽타주로 보여주며, 누군가가 아닌 그녀의 입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서술하게 한다. 초능력이나 외계 기술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게 인간으로서의 실패와 재도전의 반복이 곧 그녀가 믿고 싶은 자기 서사인 셈이다. 이 장면에서 캐럴이 이마의 장치를 떼어내는 행위는 단지 파워업을 위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내 힘의 스위치를 쥐고 있는 손을 더 이상 너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동시에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이제부터는 내가 쓰겠다”는 자기 서사의 회복이다. 그래서 이후의 전투는 일종의 해방 축제처럼 보인다. 더 이상 상대가 정해 준 룰에 맞춰 주먹만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감정을 동원해 싸운다. 히어로의 강함이 ‘힘의 크기’로만 측정되지 않고, ‘누가 나를 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캡틴 마블의 자기 서사 회수 장면은 장르적 쾌감과 메시지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해석 포인트

캡틴 마블을 기억상실과 자기서사라는 키워드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정체성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석으로 확장된다. 크리와 스크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우주 규모의 선악 대립”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구도가 뒤집힌다. 처음에는 스크럴이 침략자이자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전쟁과 박해 속에서 떠돌 수밖에 없었던 난민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반전은 단순한 플롯 트위스트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온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선전과 편집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캐럴이 겪는 정체성 혼란은, 사실 크리 제국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균열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을 크리 전사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지구인 파일럿이자 전쟁의 피해자였고, 크리의 실험으로 힘을 얻게 된 존재다. 이 모순은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영화는 이 질문에 “약한 자, 쫓기는 자, 목소리를 빼앗긴 자의 편에 서라”는 답을 암시한다. 그래서 캐럴이 최종적으로 택하는 선택은, 특정 국가나 제국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방향이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가 상징하는 고전적 국가 영웅상과는 다른, 코즈믹 시대의 윤리 기준을 제시하는 듯한 구도다. 또 하나의 해석 포인트는 “감정은 약점인가, 힘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크리는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이성적 판단만이 강함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캐럴이 자신의 감정, 특히 분노와 상실, 애정을 감추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힘을 발휘한다는 구조를 택한다. 이는 단순히 “감정도 중요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감정을 가진 존재만이 진정으로 스스로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감정이 없다면 누군가의 명령과 서사를 그대로 따르는 도구에 머물 뿐이기 때문이다. MCU 전체 속에서 캡틴 마블의 위치도 흥미롭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사이에 배치된 이 영화는, 타노스와의 최종 결전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히어로의 기원을 거꾸로 채워 넣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최강 전력 한 명 추가”에 그치지 않고, MCU가 가진 서사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역할도 수행한다. 지구 중심, 남성 히어로 중심이었던 초기 MCU의 구성 속에서, 캡틴 마블은 우주 규모의 난민 문제와 제국주의, 정보 조작 같은 테마를 슬쩍 끌어들인다. 물론 영화 한 편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히어로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폭을 넓힌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편”으로 보는 쪽이 자연스럽다. 캐럴의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고, 그녀가 코즈믹 세계에서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선택을 이어갈지는 후속작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캡틴 마블은 하나의 기원 영화이자, 동시에 “우리 각자가 믿어 온 이야기들을 다시 점검해 보라”는 제안처럼 보인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문장은 정말 내 입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써 준 대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이 영화는 기억상실 히어로의 서사를 빌려 조용히 되묻는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캡틴 마블은 논쟁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MCU 안에서 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캡틴 마블은 기억상실, 서사, 해석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훨씬 흥미로운 영화다. 크리 제국이 써 준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살던 캐럴이, 잃어버린 기억과 관계들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되찾아 가는 과정은, 단순한 파워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피니티 사가 사이에 끼어 있는 보너스 에피소드처럼 보기보다는, “누가 나를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기원 서사로 바라보며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그러면 코즈믹 액션 뒤에 숨은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기 이야기 되찾기의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yooniyoon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