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토르 라그나로크를 액션, 음악, 분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는 영화 리뷰다. 토르 시리즈가 다소 무겁고 고전적인 신화 톤에 머물렀다면, 라그나로크는 검투장 액션과 네온빛 SF 미장센, 80년대 신스 음악을 결합해 MCU 안에서도 손꼽히는 ‘감각적인 히어로 영화’로 방향을 튼 작품이다. 헬라와 아스가르드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액션의 리듬과 화면의 색감, 음악의 타이밍으로 유쾌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장면 단위 연출을 중심으로 라그나로크가 왜 “보는 맛”이 강한 영화인지 정리한다.
'토르: 라그나로크' 액션 연출
토르 라그나로크의 액션연출은 “힘이 센 신이 망치로 때려 부수는 전투”에서 한 단계 확장된다. 이전 토르 영화들에서 토르는 대체로 묠니르를 휘두르며 번개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싸웠고, 전투의 쾌감도 그 단순한 파괴력에 기대는 편이었다. 라그나로크는 그 익숙함을 의도적으로 부수면서, 토르가 액션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를 새로 디자인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토르의 ‘무기 의존’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묠니르가 부서진 뒤부터 액션은 “망치 없는 토르”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지에 집중한다. 이 전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무대가 바로 사카르의 검투장이다. 토르가 사카르에 떨어진 뒤, 그랜드마스터의 쇼처럼 포장된 검투 대결에 오르게 되는 장면은, 영화의 액션 리듬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 장면은 단순히 캐릭터를 싸움시키는 게 아니라, 관객이 ‘스포츠 경기’를 보듯 긴장과 환호를 교차하게 만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입장 음악, 관중의 함성, 상대의 등장, 무장 확인, 첫 충돌의 타이밍까지 모두 쇼의 문법을 따른다. 그래서 토르 vs 헐크의 대결은 MCU의 다른 전투들과 달리 “기술과 타이밍, 반칙과 심리전”이 살아 있는 경기처럼 보인다. 연출의 핵심은 토르를 약자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헐크와의 체급 차이를 시각적으로 분명히 보여주는 데 있다. 토르는 번개 신이지만, 이 공간에서 그는 낯선 규칙 속 외지인이다. 반면 헐크는 챔피언이고, 관중의 사랑을 받는다. 액션의 카메라 동선은 헐크의 질량감과 충격을 크게 잡고, 토르는 빠른 회피와 기동성으로 대응하게 만든다. 토르가 번개를 깨우는 순간에는 컷을 짧게 쪼개지 않고, 전류가 피부를 타고 흐르는 전조를 충분히 쌓아 “지금부터는 다른 모드”라는 신호를 준다. 그리고 번개가 폭발하는 순간, 헐크의 괴력과 다른 종류의 ‘신성한 폭발력’이 화면을 장악한다. 이 장면은 토르가 묠니르 없이도 자신의 힘의 본체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일종의 폼 전환 선언문이다.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뒤의 액션은 검투장 리듬과는 반대로 “대규모 전쟁의 동선”을 강조한다. 무지개다리에서 벌어지는 결전은 공간 구조가 명확해서, 누가 어디서 어디로 밀고 들어가는지, 토르가 전장을 어떻게 가르는지 동선이 잘 보인다. 토르가 번개를 두르고 다리를 질주하는 장면은 군중 액션을 ‘한 명의 히어로 쇼트’로 통합하는 연출이다. 수백 명의 적이 있어도, 토르가 중심선으로 파고들면 전장의 초점이 딱 한 곳으로 모인다. 여기에 발키리의 비행 돌격이 더해지면서, 수평(토르의 질주)과 수직(발키리의 낙하)이 교차해 전투가 단조롭게 보이지 않게 한다. 헬라의 액션은 또 다른 방향의 설계다. 헬라는 창과 검을 뽑아내는 능력으로 전장을 장악하는데, 연출은 이를 “무기의 무한 생성”으로 보이게 하지 않고 “공간을 칼날로 덮는 패턴”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녀가 무지개다리 위에서 칼날 비를 쏟아내는 순간, 카메라는 토르 일행의 반응을 함께 잡아 위협을 크게 만든다. 즉, 헬라의 강함은 단순히 타격의 세기가 아니라, “한 번의 동작으로 전장을 규칙째 바꾸는 압도감”으로 표현된다. 이런 설계 덕분에 라그나로크의 전투는 누가 더 세게 때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전장의 룰을 지배하느냐로 보인다. 결국 토르 라그나로크의 액션연출은 ‘토르 리브랜딩’의 과정이다. 묠니르 파괴는 단순한 충격 이벤트가 아니라, 액션 스타일을 새로 만들기 위한 서사적 장치다. 검투장으로 대표되는 쇼형 액션, 아스가르드 전쟁의 동선 액션, 헬라의 패턴형 압도 액션이 서로 다른 맛을 내면서도, 최종적으로는 “토르는 망치가 아니라 번개 그 자체”라는 메시지로 수렴한다. 이 변화가 이후 인피니티 워에서의 토르를 더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라그나로크의 액션은 단독 영화의 재미를 넘어 MCU 전체 캐릭터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비주얼
토르 라그나로크를 떠올릴 때 많은 관객이 가장 먼저 기억하는 건, 특정 장면의 대사보다 색감과 음악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음악·비주얼의 결합을 “장식”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삼는다. 가장 상징적인 요소가 바로 80년대 신스 기반의 음악과, 강렬한 네온 컬러 팔레트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런 감각을 전면에 배치한다. 오프닝에서 토르가 수르트를 상대하며 공중에서 회전하는 장면에 깔리는 신스 사운드는 “이번 토르는 다르게 간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비주얼 측면에서 사카르 행성은 이 영화의 톤을 결정짓는 공간이다. 사카르는 고전적인 아스가르드의 금빛 궁전과 정반대의 미학을 가진다. 금속과 쓰레기, 네온 간판, 기괴한 조각상, 원색의 의상들이 뒤섞인 혼종 도시다. 이 혼종성은 단순히 ‘우주 도시니까 이상하다’가 아니라, 그랜드마스터가 만들어 놓은 쇼 비즈니스 세계의 반영이다. 모든 것이 과장되고, 화려하고, 유치한데 동시에 묘하게 세련돼 있다. 그래서 토르가 이곳에서 겪는 모험은 신화가 아니라 ‘우주 예능’처럼 보이고, 그게 라그나로크 특유의 유쾌한 톤을 만든다. 의상과 캐릭터 디자인도 음악·비주얼과 맞물려 움직인다. 토르의 짧아진 머리와 검투장 갑옷은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니라, “고전적 왕자 이미지에서 벗어난 액션 스타 이미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헐크의 갑옷과 투구는 검투장 챔피언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발키리의 흰 망토와 갑옷은 전통적 전사의 고독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헬라의 검은 가시 왕관은 아스가르드의 ‘숨겨진 과거’를 몸에 두른 형상처럼 보인다. 이처럼 라그나로크는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을 의상 자체로 먼저 설명해 버린다. 음악의 사용 방식도 인상적이다. 대표적으로 ‘Immigrant Song’이 등장하는 타이밍은 거의 편집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이 곡이 깔릴 때, 액션은 단지 전투가 아니라 “뮤직비디오 같은 쾌감”으로 변한다. 컷이 과감해지고, 슬로 모션과 점프, 번개 이펙트의 타이밍이 음악의 리듬과 맞물리면서 장면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이건 흔히 말하는 “BGM이 멋있어서 장면이 멋있어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장면 설계 단계에서 음악의 리듬을 염두에 두고 액션을 구성한 결과처럼 느껴진다. 색감 역시 단순히 화려한 게 아니라, 공간마다 기능이 다르다. 아스가르드는 황금과 흰색, 검은색이 대비되며 ‘왕국의 위엄’과 ‘붕괴의 그림자’를 함께 담는다. 사카르는 초록·보라·파랑 같은 네온 컬러가 지배해 ‘혼돈과 쇼’의 느낌을 강화한다. 홍콩 성소나 뉴욕 같은 지구 공간은 비교적 현실적인 톤으로 두어, 관객이 다시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색을 통해 세계를 구분해 놓으니, 영화가 빠르게 장소를 이동해도 방향 감각이 흐려지지 않는다. 결국 라그나로크의 음악·비주얼은 “토르라는 브랜드를 재설계하는 언어”다. 토르 1·2편의 클래식 신화 톤이 토르를 다소 딱딱하게 만들었다면, 라그나로크는 신스와 네온을 통해 토르를 훨씬 대중적이고 리드미컬한 캐릭터로 재정의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토리를 다 기억하지 못해도, 사카르의 색감과 검투장의 함성, 번개가 터지는 순간의 음악만으로도 강렬하게 남는다. 보는 맛이 강한 영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출 분석
토르 라그나로크가 흥미로운 이유는, 제목부터 ‘라그나로크(종말)’인데도 영화가 내내 유쾌한 톤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보통 종말 서사는 장엄하거나 비장하게 흐르기 마련인데, 라그나로크는 웃음과 팝 감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종말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연출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장면별로 조절하며, 관객이 피로해지지 않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중요한 지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묠니르 파괴다. 토르의 상징이자 무기인 묠니르가 헬라의 손에서 한순간에 부서질 때, 영화는 농담으로 넘기지 않는다. 카메라는 묠니르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을 또렷하게 잡고, 토르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충격을 강조한다. 그 직후 토르는 곧바로 도망치고 추락하며 사카르로 떨어지지만, 이 ‘상실’ 자체는 매우 진지하게 처리된다. 이 장면이 진지하기 때문에, 이후 사카르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톤이 대비를 이루며 더 잘 작동한다. 즉, 영화는 가벼운 부분을 살리기 위해 중요한 상실과 위협은 오히려 단단하게 박아 둔다. 헬라라는 빌런도 균형을 잡는 축이다. 라그나로크의 유머는 주로 토르-로키-헐크-그랜드마스터 라인에서 나오지만, 헬라가 등장하면 공기가 확 달라진다. 그녀의 장면에서는 농담이 줄고, 공간의 색감도 차갑고 어두워진다. 이 톤 변화 덕분에 관객은 “아, 이건 진짜 위험한 사건”이라는 감각을 유지한다. 동시에 헬라의 설정—아스가르드의 과거 정복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는 영화의 테마를 단순한 웃긴 모험이 아니라 “왕국의 과거와 죄”로 확장한다. 즉, 유쾌한 영화지만, 그 밑바닥에는 꽤 불편한 역사 인식이 깔려 있다. 연출적으로도 라그나로크는 액션-개그-감정의 호흡을 짧게 끊어 배치한다. 긴장감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피로하고, 개그가 너무 길면 사건의 무게가 사라지는데, 이 영화는 그 선을 비교적 정확히 탄다. 예를 들어 헐크의 등장으로 관객이 웃고 환호하는 순간에도, 토르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는 표정으로 당황하며, 곧바로 ‘승리해야 한다’는 목표로 돌아간다. 웃음이 캐릭터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처한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토르와 로키의 관계는 라그나로크의 유쾌함을 책임지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핵심을 건드린다. 토르는 로키의 배신을 여러 번 겪었지만, 여전히 동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로키 역시 형을 놀리고 자기 이익을 챙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스가르드 편에 선다. 이 애증의 브로 케미는 개그로 소비되기 쉬운데, 영화는 이를 “가족이자 왕족인 두 사람의 미완의 화해”로도 읽히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로키가 배를 돌려 돌아오는 순간은 단순히 멋진 재등장이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진짜 선택’을 한 장면으로 보인다. 결말에서 아스가르드가 실제로 파괴되는 장면은 라그나로크의 종말 테마를 제대로 완수한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이 장면을 “패배”가 아니라 “결단”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결국 헬라를 막기 위해서는 라그나로크를 일으켜 왕국을 희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딘의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말이 여기서 현실이 된다. 즉, 비주얼적으로는 거대한 궁전이 무너지지만, 서사적으로는 토르가 왕으로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그리고 난민선 위에서 백성들과 함께 떠나는 엔딩은, 유쾌한 영화의 끝에 남는 묵직한 여운을 만든다. 종합하면 토르 라그나로크는 액션연출과 음악·비주얼의 쾌감뿐 아니라, 그 화려함 속에 종말의 결단을 버무리는 균형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다. 웃기기만 한 영화도, 비장하기만 한 영화도 아닌 “재밌는데 중요한 이야기도 하는” 토르의 재탄생. 그래서 라그나로크는 토르 시리즈의 전환점이자, MCU 코믹 계열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액션, 음악, 분석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보는 맛’이 강한 MCU 대표작이다. 검투장 대결로 액션 리듬을 바꾸고, 신스 음악과 네온 SF 미장센으로 토르의 이미지를 새로 만들며, 유쾌한 톤 속에서도 아스가르드 종말이라는 결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다시 볼 계획이라면 사카르 검투장, ‘Immigrant Song’이 깔리는 전투, 무지개다리 결전, 마지막 아스가르드 붕괴 장면을 중심으로 음악과 편집, 색감이 액션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체크해 보길 추천한다.